숨결이 지나간 자리

우기(雨岐) 2026. 5. 31. 2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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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기(雨岐)의 네번째 미술작품
[숨결이 지나간 자리]



 그림 「숨결이 지나간 자리」를 바라보며
                                            -우기(雨岐)-

색들은
서로를 밀어내지 못한 채
천천히 스며들고 있었다.

초록의 숨과
보랏빛 흔들림,

빛과 어둠이
한 자리에서 뒤엉켜
낯선 결을 이루고 있었다.

세상은 자꾸
선명해지기를 원하지만,

삶은 오히려
이렇게 번지고 흔들리는 쪽에
더 가까운 것인지도 모른다.

검은 흐름들은
지나온 밤들의 그림자 같고,

휘어진 빛의 결들은
끝내 사라지지 못한 마음의 방향 같았다.

나는 이 그림 앞에서
한 사람의 시간을 본다.

웃고 있는 얼굴 아래
얼마나 많은 감정들이
말없이 스쳐 지나갔는지를.

어떤 날은
하나의 상처가 오래 남아
마음의 색을 바꾸고,

어떤 기억은
잊었다고 생각한 뒤에도
깊은 안쪽에서
조용히 살아 움직인다.

그래서 우리는
완전히 맑아지지 못한 채
살아간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 흔들림 속에서
조금씩 자기만의 결을 만들어 간다.

숨결은
보이지 않지만,

지나간 자리마다
이렇게 삶의 무늬를 남긴다는 걸
이 그림은 알고 있는 것 같다.

흩어지고 섞이면서도
끝내
하나의 흐름으로 이어지는 것.

어쩌면 살아간다는 것은
상처 없이 맑아지는 일이 아니라,

수많은 흔들림이 지나간 자리에서도
다시 숨을 쉬며
조용히 자기 빛을 만들어 가는 일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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